[2016. 5. 4 발행 한 매일노동뉴스 이호동의 연재 컬럼]
양화대교 고공농성 31년차 해고노동자 김정근
이호동 | [email protected] 승인 2016.05.04
한 달 만에 양화대교 철제 아치구조물에 두 번 오른 나이 예순의 노동자. 1985년 해고돼 2009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며 24년 만에 회사에 복직시킬 것을 권고해 7년 동안 현장복귀를 기다린 노동자. 31년차 해고노동자 김정근 민주노총 총무국장.
김정근은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72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비단 짜는 공장 등 각종 노동현장에서 일했다. 군대에서 배관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일하며 열관리와 위험물처리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82년 1월부터 부산파이프 보일러실에서 일하게 된다. 회고담을 들으며 “노동자로서는 성분이 아주 좋았구만요. 가방끈도 길지 않고”라는 농담을 던지자 김정근은 “그런가요. 허허” 하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부산파이프 현장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나자 먼저 입사해 일하고 있던 민청학련 정윤광의 권유로 학습 소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80년 광주 학살과 전두환 정권의 민중탄압 실상을 깨달았다.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였다. 그는 이 시기에 인생관이 바뀌고 노동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회고했다.
어용노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85년 4월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이 시작됐다. 그해 4월25일 아침 8시 파업투쟁에 돌입했다. 당황한 회사와 어용노조 위원장은 "협상으로 해결하겠다"며 파업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설득했다. 파업은 저녁 7시께 종료됐다.
회사와 어용노조 위원장은 협상을 서둘러 타결해 버렸다. 파업 다음날 김정근은 근무부서 출입을 금지당했다. 사측은 4월27일 형식적인 징계위원회를 열어 4월29일자로 해고했다. 김정근은 해고된 다음날부터 출근투쟁에 들어갔다. 불법연행과 감금이 이어졌지만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민주노조 건설을 막기 위해 회사와 어용노조는 파업에 동참했던 많은 노동자들을 강제로 사직시켰다. 현장노동자들과 김정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생계가 막막했던 김정근은 구로공단의 다른 공장에 취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에 번번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85년 9월부터는 가망 없는 취업을 포기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현장소모임을 했다. 6개월간 간부집중교육을 받으며 노동운동을 학습하고 현장활동에 나섰다. 86년 11월29일부터 서울·인천 노동자들과 연대해 동대문 가두투쟁을 했고, 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서울과 인천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가두투쟁에 나섰다. 87년 7월 서울지역해고노동자복직투쟁위원회(서해투) 결성 과정에 참여했다.
김정근은 87년 7~8월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 서울지역에서 활동했다. 화염병 투쟁으로 일주일 구류를 산 뒤 같은해 11월1일 아침 7시에 석방됐다. 같은날 오후 2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문익환 목사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저녁 6시부터는 부위원장 자격으로 서울지역노동조합연합 창립대회 진행을 맡았다.
긴박하고 극적이었던 87년 11월1일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쟁의국장 시절이었던 89년 3월에는 서울지하철노조 파업투쟁을 지원했다.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정윤광이었다. 부산파이프 보일러실에서 맺어진 인연이 질기게 이어진 셈이다. 이후 전노협·공노대·민주노총에서 활동하며 긴 세월을 노동자 조직과 투쟁에 헌신했다.
김정근은 2007년 11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명예회복 신청을 했다. 2009년 6월22일 해고된 지 24년 만에 복직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그해 7월14일 복직권고 공문이 세아제강(옛 부산파이프)으로 발송됐다. 내용증명으로 서면공방이 오간 뒤 2010년 1월부터 2년간 13차례에 걸친 협상과 투쟁이 진행됐다. 그러나 복직의 길은 멀기만 했다.
김정근은 세아그룹 본사 앞에서 투쟁을 계속했다. 회장실 진입과 면담이 이어졌다.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및 접근금지 가처분, 벌금형이 응답으로 되돌아왔다.
현장으로 돌아가려는 김정근의 투쟁은 민주노총 조직실장 시절 직선제 준비로 일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2015년 재개됐다. 올해 3월부터 세아제강 본사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던 그는 3월24일 아침 8시 양화대교 철제 아치구조물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4월20일까지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사측의 약속을 받고 농성을 해제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김정근은 4월25일 아침 7시 양화대교에서 2차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5월13일까지 협상을 하기로 하고 8시간 만에 농성을 해제했다.
며칠 전 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85년에 각각 해고된 사실, 한전 김시자열사분신대책위원회 활동, 발전노조 설립과 전력산업 민영화 반대파업, 민주노총에서 맺은 10여년의 인연에 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살가운 대화를 하지 못한 아쉬움도 나눴다.
하루파업을 하고 31년째 해고된 60세 노동자는 밥 먹듯 해고가 일상화된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달려온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투쟁하는 해고자들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지원대책을 주문했다.
현장에 복직해 정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절절한 소망을 토로한 31년차 해고자노동자 김정근. 법적 정년을 앞두고 명예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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