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10일 (존 리드) 中
-1917년 11월 3일, 모스크바에서는 7일간의 전투 끝에 반혁명군을 몰아내고 소비에트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그 후 진행된 노동자, 병사 장례식 장면을 묘사한 글(발췌)-
밤늦게 우리는 텅빈 거리를 지나, 이베르스키문을 거쳐 크레믈린 앞의 커다란 ‘붉은 광장’으로 갔다. .... 광장의 한 쪽으로는 크레믈린의 검은색 탑과 담이 이어져 있었다. 높은 담 너머에서는 불꽃이 깜박거리고 있었고 그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괭이소리, 삽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진흙과 돌더미가 담 가까이에 높이 쌓여있었다. 그곳에선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횃불을 밝혀 놓고 땅을 파고 있었다.
한 어린 학생이 독일어로 말했다. “동지들의 무덤이에요.” “내일, 우리는 이곳에 혁명을 위해 전사한 500명의 프롤레타리아를 매장할 거예요.” “여기 이 신성한 곳에, 전 러시아에서 가장 신성한 이곳에 우리의 가장 신성한 동지들을 묻을 겁니다.”라고 그 학생은 말했다.
...... 우리는 크레믈린 성벽 근처에 빽빽하게 들어선 군중들을 비집고 들어가 높게 쌓아올려진 거대한 흙더미 위로 올라갔다. 이미 그곳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엔 모스크바 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던 병사 무라노프의 모습도 보였다.
붉은 광장으로 가는 모든 거리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거의가 가난해 보였고 고생에 찌든 얼굴이었다. 군악대가 ‘인터내셔널’을 연주하며 행진했고, 그 노래는 저절로 번져 바람에 일어나는 바다위의 잔물결처럼 천천히 엄숙하게 퍼져나갔다. 크고 붉은 깃발이 벽 위로부터 땅까지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엔 황금색과 흰색으로 다음과 같은 글자가 씌여있었다. ‘세계의 사회혁명을 시작한 순교자들’ ‘세계노동자의 형제애 만세!’
열풍이 광장을 휩쓸고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모스크바시 변두리 지구의 여러 공장들로부터 노동자들이 관을 메고 도착하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깃발을 들고 핏빛같은 암적색의 관을 메고 이베르스키문을 지나오는 것이 보였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들이 관을 어깨에 메고 눈물을 흘리면서 행진하고 있었는데, 뒤엔 여인들이 울며 소리치거나, 아니면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어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빳빳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열렸다가 다시 막히는 불규칙한 좁은 길을 지나 행렬은 천천히 우리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밴드는 혁명장송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서 있는 군중들과는 달리 행진하는 사람들은 눈물로 목이 메어 쉰 소리로 노래했다.
공장노동자들 사이 사이로 병사들이 그들 동료들의 관을 메고 행진했다. 경례자세의 기병대도, 붉고 검은 천으로 대포를 싼 포병대도 보였다. 깃발에는 ‘제3인터내셔널 만세’, ‘우리는 정직하고 보편적이며 민주적인 평화를 원한다’는 말들이 씌어져 있었다.
행진하던 사람들이 천천히 관을 메고 무덤 입구에까지 이르렀고 그걸 지고 올라가 다시 무덤으로 내려갔다. 그들 가운데는 땅딸막하고 건장한 프롤레타리아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젊은 여자들 그리고 늙고 주름진 여자들이 상처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들의 남편이나 아들을 따라 ‘형제들의 무덤’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이 만류하자 그녀들은 비명을 질렀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를 그토록 사랑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장례행렬은 지나갔다. 이베르스키문으로 들어와서는 광장을 지나 니꼴스까야가로 빠져나갔다. 희망과 형제애와 원대한 예언의 말들이 씌여진 깃발들이 강물처럼 흘렀다. 5만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고 세계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영원한 후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행렬은 지나갔다.
오백개의 관이 하나씩 하나씩 무덤에 놓여졌다. 해가 졌지만 깃발들은 여전히 펄럭거렸다. 밴드는 장례행진곡을 연주했고 군중들은 노래를 불렀다. 무덤가의 잎이 떨어진 나무에는 형형색색의 이상한 꽃처럼 화환들이 걸려있었다. 이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깃발들이 지나갔고, 마지막 여인들이 울면서, 열심히 뒤를 돌아보며 지나갔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서서히 그 거대한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나는 갑자기 그 경건한 러시아인들이 더 이상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달라고 기도해 줄 성직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이 지상에 그들이 꿈꾸던 세계를 실현코자 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었으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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